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자
롬 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정시예배를 위한 찬송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구 453장)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를 알고, 은혜를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주 놓칩니다. 먼저, 개인의 만남 속에서 무너집니다. 축복을 받을 시간표인데도 개인의 만남 속에서 불신앙을 배우고 인본주의를 쓰다가 축복을 놓쳐 버립니다. 또한 교회의 현장 속에서 축복을 놓치기도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축복을 찾아내야 하는데 교회 일을 하면서 자칫 불신앙에 빠지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1. 많이 수고한 자
어떤 수고를 얼마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 수고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수고한 것은 전부 은혜며 감사지 내용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 일과 사회 일은 다릅니다. 교회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공로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수고했다고 할 때 헬라어 원문에는 ‘아주 지칠 정도로 수고했다’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복음에 대한 축복을 누리고 있었던지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이름이 남는 것입니다.
2. 세 가지 헌신
그러면 초대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헌신했을까요?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초대교회가 어떻게 응답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이 복음 되도록 하는데 헌신했습니다. 복음을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아, 이게 복음이구나!’라고 느껴져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면 그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되는 날,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날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전도가 전도 되도록 헌신했습니다. 전도는 가진 것을 말하는 증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는 생명 건 헌신을 했습니다.
3. 세 명의 여자
오늘 본문의 세 여자인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는 경제력이 없었지만, 주안에서 수고하는 자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세 사람 모두 여자인데, 당시에는 여자를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만큼 여자들에게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여 중요한 기록에 남을 만큼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현장에서든지 속지 않고, 올바른 헌신만 해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포럼의 주제]
나의 환경과 상황, 현장을 보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왜 부르셨는지 무엇 때문에 내게 복음을 주셨는지 묵상해보세요.
임마누엘교회 주일 2부 / 20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