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눈
행 3:1~10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6)
정시예배를 위한 찬송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구 34장 전능왕 오셔서)
어떤 일이든지 결과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서 오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으냐가 중요합니다. 보는 것도 중요한데 보는 것 이전에 숨겨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준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복음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고 현실에 급급하여 살아갑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눈을 가졌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응답을 받았을까요?
1. 바리새인와 초대교회
바리새인들은 주로 이념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인들에게 오는 결과이고,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념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상처받은 것을 붙잡고 있는 상처된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의 상처가 이념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를 하라고 하셨는데 이념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초대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념의 눈으로 민족을 봤을 때 초대교회는 복음의 눈으로 세계를 보았습니다.
2. 지식의 눈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자기의 것을 주장했습니다. 정통, 제도, 의식,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런 것을 가치 있게 보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을 알고, 믿음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참된 지식의 눈입니다.
3. 삶
바리새인들은 전부 육신적인 눈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삶을 우선시 하였고, 체면과 정통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영적인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볼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를 알고 영적인 눈을 뜬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초대교회가 계속 받았는데 Remnant는 초대교회가 받은 축복을 받아야 하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갱신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포럼의 주제]
• 나는 나와 내 주변, 그리고 미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나요? 혹시 바리새인이 가진 눈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초대교회와 같이 복음의 눈으로 보고 있나요?
RUTC의 아침 / 2009.6.25